아빠가 대구에 있는 회사에 근무하셨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종종 대구에 방문하곤 했습니다. 특히 엄마와 저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대구에 내려가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은 대구 시내를 지하철 타고 한 번 제대로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동대구역부터 동성로, 그리고 중앙로역에 있는 기억공간까지 다녀왔습니다. 익숙한 듯 낯설었던 대구 시내는 맛있고, 새롭고, 때로는 마음 아픈 기억을 마주하게 했던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1.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 – 토끼정에서의 식사와 여유로운 쇼핑
엄마와 함께한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동대구역이었습니다. 경산이 아빠 고향인 탓에 동대구역은 어릴 적부터 명절 때마다 자주 오갔던 장소였지만, 실제로 역 밖으로 나와 시내를 구경해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날은 그 익숙함을 뒤로하고, 대구 시내 중심을 제대로 경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역과 바로 연결된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은 그 자체로 복합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외관과 고급스러운 내부는 다른 도시의 신세계 매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으며, 특히 지하 1층부터 9층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브랜드 매장은 쇼핑을 즐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엄마와 저는 지하 푸드홀과 생활용품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고, 작은 화장품과 간단한 생활 잡화를 구입했습니다.
점심은 8층에 위치한 토끼정에서 했습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유명한 이 브랜드는 일본식 가정식을 한식 스타일로 재해석한 메뉴로, 엄마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과 구성이 특징입니다. 저희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는데, 크림카레우동과 명란덮밥, 반찬과 샐러드, 그리고 음료까지 포함된 구성이었습니다. 세련되면서도 집밥 같은 편안함이 있어 엄마도 만족하셨고, 특히 크림카레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잊기 힘들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루프탑 정원에 잠시 올라갔습니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대구 시내는 생각보다 넓고 정돈된 느낌이었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공기 속에서 엄마와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기분이 참 좋았고, “다음에는 아빠랑도 같이 와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 지었습니다.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여행자들에게는 ‘출발 전 머무는 공간’이자, 지역민들에게는 ‘하루의 쉼표’가 되는 장소였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조용한 쇼핑, 그리고 엄마와의 대화가 겹쳐지면서 마음도 가벼워졌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동성로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2. 동성로 – 대구 도심의 활기와 여유, 그리고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에 도착한 우리는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동성로로 향했습니다. 동성로는 대구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쇼핑 브랜드, 화장품 가게, 로컬 맛집, 그리고 트렌디한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엄마는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하며 신기해하셨고, 저는 처음 와보는 듯한 거리의 활기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동성로 중심가에는 주말답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크게 붐비지 않고 적당히 여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거리 공연을 하는 청년들, 커플들, 친구들끼리 모여 사진을 찍는 모습,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까지. 대구 시민들의 주말 풍경은 서울과는 또 다른 정겨움이 느껴졌습니다.
길을 걷다 발견한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로컬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주문한 커피는 핸드드립 방식으로 내려줘 깊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엄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는 카페라떼를 주문했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실내에서 도심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카페에서의 시간은 짧지만 참 여유로웠습니다. 엄마는 커피를 마시며 “대구 시내는 조용하고 정돈되어 있어 좋다”고 하셨고, 저도 “생각보다 볼 것도 많고, 걷기 좋은 거리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서울처럼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이 살아있는 동성로는 하루 나들이 코스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카페를 나와선 조금 더 거리를 돌아보았습니다. 스트릿 의류 매장부터 감성 액세서리 가게, 다양한 편집샵들을 천천히 구경했고, 한적한 골목길에는 벽화와 사진 포인트들이 있어 가볍게 셀카도 남겼습니다. 서울에서는 늘 바쁘게 걷기만 했던 거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으며 풍경과 시간을 음미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3. 대구 지하철 참사 기억공간 – 마음에 새겨지는 조용한 울림
동성로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대구 지하철 참사 기억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중앙로역에 위치해 있으며, 2003년 2월 18일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입니다. 사고로 인해 19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친 대규모 참사는 전국적인 충격을 안겼고, 지하철 화재 안전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기억공간은 역사의 한 구역처럼 작게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전시 공간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영상과 함께 뉴스 클립, 사진 자료, 시민들의 증언, 구조 장비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엄마와 저는 조용히 전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수십 명의 이름이 적힌 명패 앞에서, 그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구조 현장의 기록을 보며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과거 뉴스에서만 보던 장면을 직접 눈으로 마주하니, 그 참혹함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고, 단순히 ‘사건’이 아닌 ‘사람의 일상’이었다는 점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기억공간의 끝에는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누구나 남길 수 있는 메시지 카드와 함께 노란 리본이 붙은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잠시 기도했고, 이곳을 떠나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단순한 여행지의 마무리가 아니라, 삶과 죽음, 기억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결론
아빠의 직장이 있는 대구는 익숙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천천히 돌아본 하루는 또 다른 시선으로 대구를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의 모던한 분위기와 맛있는 식사, 동성로의 활기와 카페의 여유, 그리고 지하철 참사 기억공간에서의 묵직한 감정까지. 웃고, 걷고, 돌아보고, 마음속에 남긴 하루는 그저 스쳐가는 여행이 아니라 오래 남을 여운이 되었습니다. 다음엔 아빠와 셋이 함께 이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