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회사가 서대문에 있는 저는 어느 날 반차를 내고, 마침 남편도 반차가 가능하다고 하여 오랜만에 평일 낮 데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늘 분주하지만, 낮의 서울은 의외로 조용하고 편안했습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보고, 저녁으로는 팥죽을 좋아하는 제가 꼭 가고 싶었던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까지. 하루를 천천히 음미하며 함께한 기억을 소제목별로 정리해봅니다.
1. 북악스카이웨이 – 한낮의 서울을 담은 고요한 드라이브
북악스카이웨이는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예전부터 저녁에만 방문했던 익숙한 장소였습니다. 주로 야경을 보러 사람들이 몰리는 밤 시간에 가곤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색다르게 낮 시간대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서대문에서 차를 타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 무렵으로, 점심시간이 지난 서울 시내는 비교적 교통량도 적었습니다.
평소 저녁 시간에 북악스카이웨이를 찾으면 주차 공간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경우가 많지만, 이날은 정말 조용했습니다. 차들이 드문드문 오갈 뿐, 주차장도 한산했고 도보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길을 따라 천천히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서울 전경을 보니, 늘 걷던 도시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날씨는 초여름의 맑고 선선한 날씨였고, 하늘은 맑은 파란색에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으며, 햇살은 적당히 따뜻해 창문을 열고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도로 양 옆으로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로 비치는 서울 시내의 풍경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한강과 도심이 어우러진 풍경은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냈고, 이곳이 내가 사는 도시라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중간에 팔각정 전망대 근처에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렸습니다. 몇 걸음만 걸으면 도착하는 팔각정은 북한산과 서울 북부, 그리고 도심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절경 포인트입니다. 낮의 서울은 고요하면서도 활기찼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벤치에서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이곳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밝은 자연광 덕분에 사진도 잘 나왔고, 셀카와 풍경을 배경으로 한 서로의 사진도 잊지 않고 남겼습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낮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다음부터는 일부러 낮 시간대를 선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조용한 예술 속으로 들어간 평일 오후
북악스카이웨이에서 드라이브를 즐긴 후,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삼청동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었습니다. 자동차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으며, 미술관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미술관은 평일 오후여서 사람이 많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였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역사적인 건축물인 구 기무사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만든 공간으로, 외부부터 내부까지 현대적 감성과 고풍스러움이 공존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관은 전통과 현대가 맞닿아 있는 전시가 많아,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전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날은 국립 소장 작품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고, 회화,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각 작품 앞에서 함께 해설을 읽고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신선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특히 공간이 넓고 천장이 높아 답답함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 외에도 미술관 내 야외 조형 공간과 미술관 카페도 잠시 들렀습니다. 미술관 뒤편 정원 쪽으로 나가면 조용히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들이 있고,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산책길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았습니다. 특히 이 정원은 북촌 한옥마을과 인접해 있어, 한옥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전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마무리로 미술관 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습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고요한 분위기 덕분에 대화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아메리카노와 바닐라라떼를 마시며 “다음엔 다른 전시도 보러 오자”고 다짐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공간이자, 조용히 함께 걷고 싶은 사람과 가기 좋은 장소였습니다.
3.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 고운 팥죽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마무리
전시를 모두 보고 나니 저녁 시간이 되어, 가까운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삼청동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와 찾은 곳은 팥죽 맛집으로 유명한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 이곳은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전통 있는 식당으로, 이미 SNS와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된 곳입니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웨이팅이 약간 있었으며, 내부 좌석은 모두 좌식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였고, 내부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였습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저희는 전통 팥죽과 단호박죽, 그리고 수정과를 주문했습니다.
팥죽이 나왔을 때 그 고운 질감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팥이 입자 하나 없이 곱게 갈려 있었고, 첫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습니다. 단맛이 지나치지 않아 팥 본연의 고운 맛이 살아 있었고, 곁들여 나온 동치미와 함께 먹으니 더욱 균형 있는 맛이 느껴졌습니다.
팥죽을 좋아하는 저는 이 집을 꼭 와보고 싶었고, 실제로 방문해보니 가격은 다소 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남편도 “이런 팥죽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감탄했고, 고운 팥죽이 주는 따뜻한 감성에 둘 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디저트로 나온 수정과는 달콤하고 시원했으며, 마지막 입가심으로 완벽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 근처를 한 바퀴 돌며 소화도 시켰습니다. 해가 질 무렵의 경복궁 주변은 낮보다 더욱 고즈넉했고, 조명을 받은 한옥들과 담벼락이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시끄러운 곳 한 번 가지 않고, 조용하고 감성적인 코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데이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결론
반차를 내고 떠난 평일 오후의 서울 데이트는, 주말보다 더 고요하고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북악스카이웨이의 한낮 풍경,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예술 산책, 그리고 팥죽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감동까지. 하루 종일 느긋하게 걷고 대화하며, 도심 속에서도 여유와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한 이 기억은 일상 속 잠시 멈춤이 주는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고, 앞으로의 바쁜 날들 사이에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