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중이던 남편과 함께, 교회 지인들과 총 여섯 명이 스타리아 차량에 몸을 싣고 광양과 순천, 하동으로 당일치기 봄 여행을 떠났습니다. 출발지는 경기도 남양주 별내였고, 새벽녘 어둠을 뚫고 남도로 향하는 길은 상쾌하고 기대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한창 매화가 피기 시작한 3월 초, 남쪽은 봄기운이 완연했고, 꽃과 물, 그리고 따뜻한 온정 속에서 하루를 보낸 기억은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1. 광양 매화마을 –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길
첫 번째 목적지는 전남 광양에 위치한 광양 매화마을(섬진마을)이었습니다. 이곳은 매년 3월 초부터 중순까지 매화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섬진강을 따라 펼쳐지는 매화 군락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봄꽃 명소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주말이었고, 다행히 혼잡도가 심하지 않아 비교적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남양주 별내에서 새벽 4시경 출발해 약 4시간 반을 달려 오전 8시 반 무렵 도착했습니다. 매화마을 주차장은 축제 시즌이면 혼잡하므로, 인근 임시 주차장에 차량을 세우고 마을 입구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차량 내에서 남편과 나란히 앉아 섬진강 너머 하얗게 피어난 매화 풍경을 바라보며 여행의 설렘을 나누었던 기억이 인상 깊습니다.
매화마을은 크게 홍쌍리 매실농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 따라 펼쳐진 산비탈에 매화나무가 빼곡히 심겨 있습니다. 산책로는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형태로, 운동화 착용은 필수입니다. 이날은 아침 공기가 차가웠지만, 해가 떠오르며 기온이 금세 오르고 매화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졌습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먼저 삼각대를 꺼내 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배경 삼아 꽃 아래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습니다. 특히 남편과 매화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지금도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을 만큼 소중한 추억입니다. 강물 소리와 어우러지는 새소리, 산뜻한 꽃향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조용하게 퍼져 나가는 그 공간은 평소의 일상을 잊게 해주는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산책을 마친 후에는 마을 입구에 있는 로컬 푸드 부스에서 매실차와 군고구마를 먹으며 잠시 휴식했습니다. 농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가판대에서는 수제 매실청과 매실잼도 판매하고 있었으며, 선물용으로 소량 구매해 차량에 실었습니다. 간단한 요깃거리로는 매화빵, 매실 떡도 인기였습니다.
전체적으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머무는 일정이 적당하며, 오전 시간대에 방문하면 사람도 덜 붐비고 사진도 훨씬 예쁘게 나옵니다. 광양 매화마을은 봄을 일찍 맞이하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입니다. 특히 연애 중이거나, 소중한 사람과 함께 방문한다면 그 기억이 더욱 향기로워질 것입니다.
2. 억불산장 – 한적한 산속에서 맛본 한 상 가득한 점심
매화마을 관람을 마친 후, 차량은 섬진강을 따라 하동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두 번째 코스는 억불산장이라는 이름의 전통 한식당으로, 화개장터 인근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교회 지인 중 한 분이 SNS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추천해준 곳이었으며, 산속 풍경과 함께 제철 재료를 사용한 건강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억불산장은 큰 간판이 없어 초행길엔 지나치기 쉬운 구조이지만, 내비게이션 검색으로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외관은 전통 한옥 느낌의 기와집이며, 마당 한편에는 정자와 작은 연못이 있어 자연 속 휴식처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주차장은 넉넉한 편이며, 주말 정오쯤 도착했을 때 이미 두세 팀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토종닭 숯불구이 한마리였고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풍성한 구성을 제공받았습니다. 반찬 수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었으며, 직접 담근 나물무침, 된장국, 더덕구이, 도토리묵, 묵은지, 제철 겉절이 등이 순서대로 나왔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갓 무쳐 낸 참나물과 새콤달콤한 매실장아찌였습니다.
식사는 좌식 스타일의 방에서 이루어졌고, 창문 너머로는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일행은 따뜻한 보일러 바닥에 앉아 차분하게 식사를 나누었고, 각자의 앞에 놓인 찬들을 함께 나누며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이런 밥이 진짜 밥 같다”며 만족스러워했고, 식후에는 주전자에 담긴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 마시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억불산장은 요란한 장식이나 인공미 없이,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마당 정자에서 사진도 찍고 잠시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목적지인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3. 순천만 – 자연과 낭만이 어우러진 황금빛 풍경
하동에서 약 1시간 가량 이동해 도착한 마지막 목적지는 전남 순천에 위치한 순천만 습지였습니다. 오후 3시쯤 도착한 순천만은 황금빛 갈대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8,000원이었으며, 환경보호 기금과 주차료가 포함된 구조였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넓은 광장을 지나면 순천만 습지의 중심부로 이어지는 나무 데크 산책로가 펼쳐집니다. 길이는 왕복 약 4km로, 천천히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걸음마다 펼쳐지는 광활한 갈대밭, 수로 위를 헤엄치는 철새들, 그리고 배경으로 깔리는 순천만의 산능선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왔습니다. 남자친구와 나란히 걷다가, 갑자기 부는 강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그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주변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뿐 아니라 연인, 사진작가들도 많았고, 삼각대를 들고 풍경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중간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순천만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용산 전망대’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물결 모양으로 흐르는 수로와 그 위를 나는 새떼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합니다. 일몰 무렵에는 노을이 순천만 갈대밭 위로 붉게 물들어, 하루의 마무리를 가장 낭만적으로 완성해주는 명소입니다.
우리는 전망대 아래 데크 벤치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오늘 하루 정말 힐링이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고, 이 여행이 단순한 나들이를 넘어 각자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기억’이 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론
새벽부터 시작해 늦은 저녁 귀가까지 이어진 당일치기 남도 여행은 피곤함보다도 뿌듯함이 더 컸던 하루였습니다. 광양 매화마을에서의 봄 향기, 억불산장에서의 따뜻한 밥상, 순천만의 장대한 갈대풍경까지. 연애하던 시절, 교회 지인들과 함께한 여행은 단순한 장소를 넘어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남겨주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한 그 하루는, 봄바람처럼 은은하게 남아 앞으로도 오래도록 웃음 짓게 만들 소중한 기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