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5일, 광복절. 무더위가 극심했던 그날, 우리 외가 식구들은 오랜만에 다 함께 경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족 네 명(엄마, 아빠, 남동생, 나)을 포함해 이모 부부, 외삼촌 가족(외삼촌, 외숙모, 사촌 여동생 두 명, 그리고 강아지)까지 총 10명과 1마리.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신경주역에 도착한 뒤, 미리 예약해둔 스타렉스를 타고 본격적인 경주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정보다 더 뜨겁고 숨 막히는 날씨 덕분에 도보 여행은 사실상 포기.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관광보다는 먹방에 집중한, 기억에 남는 색다른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1. 교리김밥 – 땀 흘린 아침의 포상 같은 김밥 한 줄
경주에서의 첫 코스는 유명한 교리김밥이었습니다.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교리김밥 본점 앞은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여름 한낮보다 조금 덜한 시간이었지만, 이미 땀이 뻘뻘 날 정도의 더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줄을 설 인원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주변 그늘에서 대기하는 방식으로 번갈아 움직였습니다.
교리김밥은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김밥집 중 하나로, 특이하게도 단무지와 달걀지단이 풍성하게 들어간 ‘계란김밥’이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일반 김밥과는 확실히 다르며, 간단한 재료만으로도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기다림 끝에 5줄 이상 포장해온 김밥을 가지고 우리는 인근 공원 벤치로 이동했습니다. 벤치가 그늘 아래 있어 앉아 먹기에 나쁘지 않았고, 근처의 느티나무 아래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었습니다.
김밥을 한입 베어무는 순간, 고소한 계란과 고슬고슬한 밥, 짭조름한 단무지가 어우러져 놀라운 조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덥고 지친 몸에 이 한 줄이 주는 위로는 그 무엇보다 강렬했습니다. 아이들도 잘 먹고, 어른들도 “이거 진짜 맛있다”를 연발하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밥 외에도 교리김밥에서는 유부초밥, 떡볶이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김밥만 선택해 간단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위 속에서 오래 앉아 있기 어렵기 때문에, 간단히 먹고 시원한 차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교리김밥의 인기는 정당했고, 오랜 시간 기다릴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단순한 한 끼였지만, 경주의 대표 먹거리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 음식이었습니다.
2. 포항 물회 – 바다와 함께하는 얼음 가득 시원한 한 그릇
경주의 폭염 속에서 도보 관광은 무리라고 판단한 우리는 급히 다음 계획을 조정해, 차를 타고 포항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약 40분 정도 이동하면 도달할 수 있는 포항은 경주와 가까운 항구도시로, 신선한 해산물과 시원한 물회로 유명한 곳입니다. 마침 바다도 보고 싶고, 얼음 가득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이 절실했던 상황이라 모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포항 구룡포 쪽의 유명한 물회 전문점이었습니다. 바닷가 근처에 위치해 바다 구경도 가능하고, 주차도 넉넉해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에 좋았습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물회를 주문했습니다. 몇몇은 아이들을 위해 회덮밥이나 우동, 비빔국수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물회는 살얼음이 동동 떠 있고, 다양한 생선회와 채소, 배, 오이 등이 어우러져 식감이 풍성했습니다. 고추장 양념이 적당히 새콤달콤해 부담스럽지 않았고, 찬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온몸에 시원함이 퍼졌습니다. 이 무더위 속에서는 정말 최고의 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바로 앞 바닷가로 걸어 나갔습니다. 마침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시원함이 느껴졌고, 물회를 먹고 난 직후의 배부른 만족감과 함께 바다를 보니 더없이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바위 위에 올라 사진을 찍고, 강아지도 바닷가 산책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포항에서의 점심은 우리 여정의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습니다. 구경은 못 해도 음식 하나로 모두가 행복해졌고,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날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가 도보 관광을 막았다면, 물회는 우리에게 다시 활력을 주는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3. 황남빵 – 더위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 간식
포항에서 경주로 돌아가는 길, 오후가 넘어갈수록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한 가지는 꼭 들르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바로 황남빵 본점이었습니다. 경주를 대표하는 전통 간식으로, 수제 팥앙금이 듬뿍 들어간 작은 둥근 빵은 경주 여행의 필수 기념품이자 먹거리입니다.
황남빵 본점은 경주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늘 포장 대기 줄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오후 시간대라 줄이 짧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포장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황남빵은 첨가물이 적고 담백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며, 냉장 보관 후 오븐에 데워 먹으면 갓 구운 맛처럼 즐길 수 있어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우리 가족은 각자 한 상자씩 구매했고, 일부는 매장 앞 벤치에 앉아 바로 먹기도 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뜨거운 음식을 멀리했던 하루였지만, 황남빵의 따뜻한 팥소는 오히려 속을 안정시켜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촌 동생들은 한 입 베어물고는 “진짜 맛있다”며 감탄했고, 어른들도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간식 먹는다”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황남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신경주역으로 이동해 다시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햇살은 여전히 강했고, 차창 너머로 보이는 논과 들은 뜨거운 공기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가볍고 든든했습니다. 당일치기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건 입은 참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결론
2020년 광복절, 더위에 굴복한 듯 보였던 경주 여행은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는 독특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교리김밥의 포근한 한 줄, 포항 물회의 시원한 한 입, 황남빵의 달콤한 마무리까지. ‘보기보다 먹기’가 중심이 된 이 여행은 외가 식구들과 함께였기에 더욱 즐겁고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옆에 함께 있는 가족과 친척들의 존재 자체가 감사했던 하루였습니다. 때론 여행이란 발로 걷는 것보다 입으로, 마음으로 더 깊게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