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뒤, 동료와 휴가 시기가 맞아 즉흥적으로 계획하게 된 여행. 우리가 선택한 목적지는 전라남도 구례와 경상남도 하동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KTX를 타고 구례역에 도착해 렌트카를 빌리고, 섬진강 근처에서 재첩국수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흐리고 꾸리꾸리했지만, 오히려 그 분위기 덕분에 영화 ‘곡성’이 떠오르는 오싹한 기분도 들었고,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특히 삼성궁으로 향하던 험난한 길, 매암제다원에서의 고요한 시간, 그리고 하동의 짚와이어 체험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1. 삼성궁 – 안개 낀 지리산을 넘어 도착한 신비로운 공간
재첩국수로 허기를 달랜 뒤,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한 곳은 구례의 삼성궁이었습니다. 삼성궁은 지리산 깊숙이 자리한 민속 신앙 공간으로, 환인·환웅·단군을 모시는 민족의 성지이자 예술적 감각이 살아 있는 자연 예술 공간입니다. 도착하기 전까진 그렇게 특별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도착하고 나니 왜 사람들이 이곳을 '한국의 숨은 성지'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삼성궁으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최단거리를 안내했지만, 그 길은 곧 지리산 중심을 관통하는 협곡 도로였습니다. 우리가 운전한 차량은 아반떼였고, 날씨는 흐리고 안개가 자욱한 상황이었으며, 도로는 좁고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옆은 낭떠러지에 가까운 구간이 많았고, 전방 시야는 흐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곡성 영화의 배경지가 근처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괜히 으스스한 기분도 들었고, 우리는 웃으며 “이거 곡성 시즌2 아니야?”라는 농담도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30여 분간 산길을 오르다 도착한 삼성궁 입구는 정말 고요하고 장엄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이었고, 매표소에서 지도를 받은 후 내부로 들어섰습니다. 삼성궁은 한 명의 장인이 수십 년 동안 조성한 공간으로, 돌탑과 나무 조각, 기이한 형상의 건축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고, 걷는 내내 마치 전통 판타지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도 이곳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과 계곡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하늘을 향해 솟은 돌기둥들, 손으로 하나하나 쌓았을 법한 탑들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오히려 그 날씨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사람은 거의 없었고, 우리가 거의 유일한 방문객처럼 느껴졌습니다.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삼성궁 정상 부근에서는 안개가 걷히며 지리산의 수묵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힘들게 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동료와 함께 “이런 데를 와볼 기회가 있을까?”라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다른 방향으로 정비된 길을 택했고,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삼성궁은 단순한 명소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였고, 이 여행의 시작을 완벽하게 장식해주었습니다.
2. 매암제다원 – 고요한 찻잎 사이로 흘러가는 힐링의 순간입니다
삼성궁에서의 신비로운 체험 이후, 잠시 산을 내려와 향한 곳은 매암제다원이었습니다. 전남 구례에 위치한 이 다원은 다소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지만, 실제로 방문해보니 그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비게이션으로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고, 입장료는 따로 없었으며 주차장도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매암제다원은 드넓은 녹차밭과 자연을 그대로 품은 공간입니다. 산을 병풍처럼 둘러싼 지형에 맞춰 테라스 형태로 조성된 다원은 초록빛의 찻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마치 초현실적인 풍경처럼 다가왔습니다. 흐렸던 날씨도 이때쯤엔 맑게 개었고, 햇살이 녹차잎에 반사되면서 황금빛의 고요함이 감돌았습니다.
다원 내에는 작은 찻집이 운영되고 있었고, 저희는 안으로 들어가 직접 찻잎으로 우려낸 녹차를 주문했습니다. 차는 향이 진하면서도 부드러웠고, 차와 함께 제공된 전통 과자와 함께 먹으니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진 다원 풍경을 바라보며, 프로젝트 기간 동안 바쁘게 달려왔던 시간들이 잠시 멈춘 듯했습니다.
차를 마신 후, 다원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많아 스마트폰과 카메라 셔터를 번갈아 누르며 다양한 구도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층층이 펼쳐진 찻잎 사이에 서서 찍는 사진은 마치 제주 오설록을 떠올리게 했고, 그에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했습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차분했습니다.
매암제다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용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정적의 공간’이었습니다. 함께한 동료도 “여기서 하루 종일 있어도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했으며, 우리 둘은 평소 회사에서 느끼지 못한 마음의 여백을 이곳에서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화도 많지 않았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깊은 소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3. 짚와이어 – 아시아 최장의 하동 짚라인, 스릴과 해방감
둘째 날 아침,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향한 마지막 코스는 하동의 짚와이어였습니다. 하동 짚와이어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거리인 3.1km 길이를 자랑하며, 지리산과 섬진강, 한려해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체험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액티비티입니다. 예약은 사전에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날씨가 좋아 다행히 운행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안전 교육부터 장비 착용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되며, 직원분들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차를 타고 출발 지점까지 올라가는데, 이미 그 순간부터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에 도착해 내려다본 한려해상의 풍경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하늘을 나는 듯한 경험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발을 띄는 순간,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3.1km의 구간 동안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는 체험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머릿속은 텅 비었고, 오직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과 날아가는 느낌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해방감이 느껴졌고, 바람 소리와 함께 흘러가는 구름과 강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단 도착지에 다다르며 속도는 서서히 줄었고, 도착 후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이 터졌습니다. 동료는 “한 번 더 타고 싶다”며 흥분했고, 저 역시 이런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느꼈습니다. 액티비티 후에는 근처에 있는 회 전문점을 찾아 남해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회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싱싱한 광어와 우럭 회, 그리고 미역국과 밑반찬까지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을 받았고, 맛은 물론 분위기까지 완벽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회를 먹는 이 여유는 도심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바닷가를 거닌 후, 우리는 차를 돌려 구례역으로 향했습니다.
결론
짧지만 강렬했던 1박 2일의 구례-하동 여행은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험한 산길을 지나 도착한 삼성궁, 마음을 정돈시켜준 매암제다원, 그리고 해방감을 안겨준 짚와이어까지. 동료와 함께한 이번 여정은 여행지를 공유하는 것 이상의 경험이 되었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일상에 다시 돌아가도, 그 날의 바람과 풍경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머물 것 같습니다.